1986년 일본 오사카 대학의 박사과정 학생 이시노 요시즈미는 대장균의 유전자를 시퀀싱(DNA의 염기서열을 순서대로 읽어내는 것)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염기서열 중 동일한 염기서열 다섯 개가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반복되는 염기서열 사이에는 이시노가 '간격서열(spacer)'이라고 부른 일반적인 염기서열이 끼어있었다. 이상하긴 했지만, 이시노는 다른 곳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논문에 기록하고는 거기서 더 깊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1990년 박사논문 주제로 고세균을 연구하던 스페인 알리칸테 대학의 대학원생 프란시스코 모히카는 고세균의 DNA를 시퀀싱하다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동일한 염기서열을 발견했다. 이 염기서열은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같은 '회문구조'였다. 모히카는 이런 내용을 담은 논문이 있는지 검색하다가 이시노의 논문을 발견했다. 고세균뿐 아니라 대장균에도 똑같이 반복되는 염기서열과 간격서열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모히카는 여기에 중요한 생물학적 목적이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리고 이 반복되는 염기서열에 '크리스퍼(CRISPR,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 일정 간격을 두고 모여있는 짧은 회문구조의 반복서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계속된 연구에도 그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2003년, 모히카는 대장균의 반복되는 크리스퍼 염기서열 사이에 들어있는 일반적인 염기서열, 즉 간격서열을 보다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 간격서열이 대장균을 공격하는 바이러스의 DNA 염기서열과 일부 일치했던 것이다. 모히카는 바이러스와 동일한 DNA 염기서열이 기록된 크리스퍼 간격서열을 가진 박테리아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고, 그 간격서열이 없는 박테리아만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침입해도, 공격에서 살아남은 박테리아는 그 바이러스의 DNA 일부를 간격서열로 자신의 DNA에 저장하여 후천적인 면역을 획득했다.
그로부터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미국 국립생물공학정보센터의 유진 쿠닌은 박테리아가 크리스퍼 연관 효소(Cas, CRISPR Associated protein)로 자신을 공격한 바이러스의 DNA 일부를 잘라 자신의 DNA에 삽입한다는 사실을 밝히며 모히카의 이론을 확장했다. CAS 단백질의 발견이었다. 다만 쿠닌은 크리스퍼 면역체계가 RNA 간섭을 통해 작동한다고 잘못 추정했다. 박테리아가 간격서열을 이용해서 전령 RNA(mRNA)의 작업을 방해하는 식으로 작동한다고 봤던 것이다. 이는 다른 학자들도 마찬가지였고, 2006년 RNA 간섭의 손꼽히는 전문가였던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에게, 같은 대학에서 크리스퍼를 연구하는 어떤 교수로부터 뜬금없는 연락이 온 것도 그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