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돈 vs 자기돈

셰프가 늘 다른 곳에 가서 식사를 하는 레스토랑에 가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자산관리자도 마찬가지다. 운용중인 고객의 자금에 자신의 돈을 포함해서 운용하는 자산관리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주목해 볼만 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금관리자는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하기보다 회사의 이익을 우직하게 따를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 폴 로젠스타인-로던은 인간의 동기를 이해할 때 '압박 요인'을 강조했다. "고대 로마에서는 아치를 만들고 나서 비계를 치울 때 건축가를 그 밑에 세워두었습니다. 아치가 무너지면 맨 처음 알 수 있게 말이죠. 따라서 아치의 완성도에 대한 압박이 그 누구보다 클 수 밖에 없습니다. 로마의 아치가 지금까지 많이 남아있는 건 당연한 겁니다."

투자라고 해서 달라야 할까? 자금관리자가 고객의 돈에 자기 돈을 넣어서 관리해야 한다면 상대 성과를 중시하는 버릇이 바로 사라질 것이다. 전문 투자자로서의 관심이 다른 사람의 심중을 넘겨짚으려는 것에서 합리적인 범위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수익을 극대화시키는 것으로 바뀌면서 지적인 정직함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더 많은 기관투자자가 상대 성과보다 절대 성과에 집중하게 되면 그동안 고평가되기 십상이었던 증시의 성향이 줄어들 것이며 증시 참여자들도 도를 넘는 행위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단지 무리를 따라가기 위해서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만 투자하게 될 것이다.


기관투자자들이 좋은 성과를 올리는데 방해가 되는 장애물

기관투자자가 좋은 성과를 올리는데 방해가 되는 가장 큰 장애물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증권에 대한 정보는 물론 기업과 거시경제의 진행에 대한 정보는 누구보다도 많다. 잔뜩 쌓여있는 연간 보고서, 월스트리트 연구서, 금융기관의 정기 간행물에서 필요한 정보를 걸러내는 것만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이런 정보를 걸러서 요약하려면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든다.

투자자는 보유하고 있는 증권을 모니터링하는 동시에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금관리자는 늘 새로운 투자자산을 찾고 있으므로 기존 고객외에도 수많은 잠재고객을 만나는데 시간을 할애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존 고객이나 잠재고객 모두 자금관리자를 만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시간을 뺐지 않는 방법이지만, 혹시나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는 기분을 피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자금관리자를 만나는 것이 문제다. 각각의 고객만 놓고보면 자금관리자를 만나는데 부담될 정도의 시간이 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쌓이면 투자 결과에 타격을 준다.

기관투자자의 또다른 고질병은 틀에 박힌 의사결정 절차이다. 자금을 잘 관리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닌데, 많은 기관투자자는 거기에다 내부적으로 관습, 타성, 너무 분산된 의사결정 구조를 더해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혁신적이고 역발상 투자를 하는 기관투자자는 도태되어 버린다. 회사안에서 개인적인 위험을 감수하므로 투자위험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치르는 비용은 금융 손실을 넘어 마케팅에도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개인 이력에도 손상을 입는다. 따라서 기관투자자는 일반적인 관례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거의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미 제가치에 도달하거나 가치를 넘어선 가격에 매매하고, 이미 투자의견이 매도로 합의된 경우가 아니라면 매도 추천을 하지 않는다. 증권을 너무 오래 보유해서 생기는 다양한 위험은 너무 빨리 팔아서 생기는 위험보다 적다.

자금관리자에게 있어서 증권 매도가 어려운 이유는 세가지가 더 있다. 첫째, 많은 경우 투자는 현금을 투입해서 비유동적인 자산을 구입하는 것이며, 기관 차원에서 포지션을 정리하는 것은 단순히 그런 행동 이상을 의미한다. 둘째, 매도를 하게 되면 다른 것을 매입하는 후속 조치를 해야 한다. 따라서 그냥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속 편하다. 매도를 하면 자금관리자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시간을 많이 빼앗기면서도 별다른 추가 이익은 기대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뮤추얼펀드를 관리하는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뮤추얼펀드 매니저들이 매도를 싫어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대형 기관투자자에서는 포트폴리오 관리업무에서 분석업무를 따로 떼어놓는 곳이 많다. 포트폴리오 관리자 밑에 분석가를 두는 것이다. 포트폴리오 관리자는 하향식 방법을 기반으로 폭넓은 시장전망과 분석가의 추천을 합쳐서 특정 투자결정을 내린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면 실수할 경우가 많은데, 매매하는 증권을 개인적으로 분석해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투자 대상기업에 직접적인 지식이 있는 분석가가 포트폴리오 관리자가 내세우는 하향식 방법에 휘둘리게 될 수 있다.

기관투자자가 좋은 성과를 올리는데 장애물이 되는 다른 요인이 있다. 기관의 포트폴리오 관리자가 인간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자금관리자가 전문가로 투자사업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개인투자자가 휩쓸리는 어떤 힘, 그러니까 빠르고 쉬운 이익을 좇는 탐욕과 합의가 주는 편안함, 가격하락의 공포 같은 것에 제물이 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기관투자자의 잘못된 관행과 인간의 감정이라는 이 두 가지 부담을 극복하기란 매우 어렵다.


포트폴리오의 규모가 미치는 영향

기관투자자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있다. 관리하는 돈이 많을수록 기관투자자는 더 많이 번다. 하지만 관리하는 돈의 규모가 증가할수록 투자 수익에는 '규모의 불경제'가 생긴다. 즉, 투자금 1달러 당 수익은 투자 자산이 증가할 수록 줄어드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훌륭한 투자 아이디어가 금방 떨어지기 때문이다.

주요 자금관리회사에서 투자하는 곳은 대부분 시가총액이 큰 대기업 증권이다. 중소기업에는 투자할 만한 근거를 찾아내기 어렵다. 이점을 설명하기 위해 10억 달러짜리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초거대 기업의 관리자를 가정해보자. 지나치게 분산하지 않고 적당한 성과를 올리기 위해, 관리자는 한 기업당 5천만 달러씩 총 스무개 기업의 증권을 산다. 증권을 쉽게 처분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 각 기업별 주식이 해당 기업 총 유통주식의 5%를 넘지 않게 한다. 이런 규정을 적용하면 증권을 살 수 있는 대상 기업은 시가총액이 최소 10억 달러를 넘어가는 곳에 한정된다(10억 달러의 5%면 5천만 달러가 된다).

1991년 초반에는 시가총액이 그 정도되는 기업이 559개에 불과했다. 아주 작은 숫자였던 것이다.

나는 기관투자자의 투자행위에 존재하는 이런 종류의 제한을 '자율적 제한'이라 칭한다. 하지만 이 제약은 투자자가 완전히 임의적으로 적용한 제한이 아니다. 포트폴리오의 규모 탓에 적용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대규모 투자관리자의 고객에게는 유감스럽지만, 앞의 사례에서처럼 일정 규모 이하의 기업은 아무리 투자 이점이 있어도 투자대상에서 자동적으로 제외된다.


기관투자자의 자율적 통제

기관투자자에게는 다른 몇가지 자율적 통제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신중한 투자자' 기준을 비롯해서 그와 비슷한 '수용 가능성 규칙'에 대응하여, 많은 기관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에 제한을 둔다. 포트폴리오 내 현금 비율에 제한을 두는 곳도 있다. 5달러 미만의 증권이나 비상장 증권, 재정위기에 처한 기업이나 파산한 기업, 배당금이 없는 기업의 증권을 사지 못하게 하는 곳도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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