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S-(13) 3장 1/4
3장
투자기관의 수익 경쟁: 패자는 고객이다
건전한 투자처를 찾는 은퇴펀드나 기부펀드가 증가하면서 최근 3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바로 기관투자자가 득세하게 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기관투자가 발전하면서 운용되는 자금에서 나오는 이익은 감소했다. 기관투자자들은 단기 투자, 상대적인 성과위주 투자를 하면서 은퇴펀드나 기부펀드가 지향해야 할 장기적인 관점이 결여되었다. 가끔은 자진해서 만들기도 하는 수많은 규칙과 제약도 기관투자자들이 좋은 투자수익을 거두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수십년 전만 해도 금융시장에는 스스로 투자결정을 내리는 개인투자자들이 대부분이었으며 투자세계는 지금보다 단순해서 국채와 우량 사채가 투자수단의 거의 전부였다. 그리고 매우 주의를 기울이는 시장이었으며 1929년 증시의 붕괴와 함께 이어진 대공황의 기억은 천천히 잊혀졌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회사 은퇴기금이 규모가 커지면서 전문 투자관리자의 사업기회가 생겨났다. 투자관리자가 운용하는 펀드의 총액은 1950년 1,070억 달러에서 1968년에는 5,00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1980년에는 2조 달러, 1990년에는 6조 달러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40여년 동안 매매된 미국 주식 중에서 기관 투자자가 보유한 주식은 8%에서 45%로 증가했다.
1974년 '종업원퇴직소득보장법(ERISA)'에 따라 기관투자자들은 미래에 퇴직하는 사람들의 수탁자로서 위험은 제한적이면서도 합당한 투자수익을 얻어야 했다. 그리고 연금펀드를 운용할 때 '신중한 투자자'의 입장에서 투자해야 한다는 '신중한 투자자 기준'을 도입하여 보수적인 운용을 하도록 했다. 하지만 기관투자자의 운용방식은 법규의 의도를 벗어나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1979년 미 노동부가 '신중한 투자자'의 기준이 전체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적용되는 것이지 포트폴리오에 담긴 개별 종목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결하자 개별 투자건별 위험은 무시하는 전체 포트폴리오 위주의 투자기법이 가능해졌다. 게다가 대다수 기관투자자들은 신중한 투자자 원칙과는 다르게 상대적 성과위주의 단기 투자에 열을 올렸다.
오늘날 기관투자자들은 주식 거래량의 대략 3/4를 점유하면서 금융시장을 지배한다. 기관투자자가 주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모든 투자자들은 기관투자자의 행동에 큰 영향을 받는다. 기관투자자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은 왜 어떤 주식은 고평가가 되고 어떤 주식은 저평가가 되는지 이해하고 어떤 영역에 기회가 있는지 알아내는데 도움이 된다.
자금관리 사업
기관투자자의 영향력이 그렇게 무시무시하지 않았다면 상황은 아마도 웃겼을지도 모른다. 힘들게 번 수천억 달러의 돈이 깊이 있는 연구나 분석도 없이 판에 박힌듯 이리저리 투자되었을테니 말이다. 일반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하면 합의나 집단 사고를 들 수 있다. 집단 행동은 보통 수준의 결과를 보장한다.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결과를 가져올 위험은 없는 것이다. 사실 많은 자금 관리자들이 상대적 성과를 위해 단기투자하는 것은 '기관투자자'라는 말에 위배되는 것이다.
기관투자자의 존재이유는 좋은 투자결과를 얻으려는 끊임없는 도전과 투자자에게 투자수익을 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투자 목적이 투자 고객들과 어긋나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자금관리자들은 성과에 따라 보수를 받는 게 아니라 관리중인 자금에서 일정 비율만큼 보수를 받는다. 보수를 더 많이 받으려면 관리 자금의 규모를 늘려야 하는 것이다. 자금관리자는 운용하는 자금이 많을수록 많은 수입을 얻지만, 정작 운용수익을 올리기는 어려워진다. 이렇게 자금관리자의 수익과 고객의 수익간의 이익 충돌은 보통 관리자의 이익쪽으로 결정된다.
자금관리 사업은 수익성이 매우 높으며 사업에 필요한 자본도 매우 적게 들면서도 버는 돈은 많고 빠른 시간 내에 짭짤한 연금 같은 존재로 발전한다. 투자관리 사업의 수익성이 좋아지면 많은 고객이 한꺼번에 떠나지 않는 이상 수익성이 계속 유지된다. 게다가 신규 고객이 내는 관리 수수료는 거의 100% 수익이 된다. 반대로 고객이 빠져나가면 수익성도 그만큼 떨어진다. 줄어든 수익을 상쇄하기 위해 절감할만한 다른 비용이 없기 때문이다.
기관투자자에게 고객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매우 크다. 고객은 성과가 최악인 관리자를 빈번하게 갈아치우기 때문에(그리고 관리자는 여기에 두려움을 가진채 살기 때문에) 관리자들은 대부분 대중에게서 멀리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평균 성과를 거두는 관리자가 그래도 최악의 성과를 거두는 관리자보다 쫓겨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특이한 결정이 성공하면 매우 높은 투자성과를 올리고 고객의 수익을 높여주지만, 성과를 깎아먹고 고객의 이탈을 부르는 실수를 저지를 위험은 매우 높아진다.
상대적 성과를 위한 단기 경쟁
자기 꼬리를 물기위해 뱅뱅도는 개처럼 기관투자자는 대부분 단기에 성과를 올려야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기관 소속 펀드매니저는 시간 단위로 성과를 계산하고 다른 기관의 펀드매니저와 성과를 매일 비교당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렇게 빈번하게 성과를 비교해 줄을 세우면 투자를 할 때 단기적으로 보게 될 수밖에 없다. 단기 성과가 나쁘면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실업률 같은 장기 지표를 보고 투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처럼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펀드매니저의 입지는 연금펀드 컨설턴트 탓에 더 악화된다. 이 컨설턴트들은 수많은 펀드매니저를 평가하고 그들의 성과를 비교하고 투자 스타일을 대조한 다음 고객에게 추천한다. 컨설턴트의 추천이 자금관리 사업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결국 연금펀드 컨설턴트들도 펀드매니저들에게 단기적 성과를 올리게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상대 성과를 중요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상대 성과는 투자 결과 측정법이 포함되는데 절대 기준이 아니라 다우존스 평균이나 S&P 500 인덱스 같은 증시 지수, 혹은 다른 투자자의 성과를 기준으로 측정한다. 기관투자자는 대부분 투자의 성패를 상대 성과로 측정한다. 그래서 증시 지수나 비슷한 매니저들의 성과를 뛰어넘어야 하는 펀드매니저는 투자대상이 매력적인지 간과할 수도 있고 때로는 절대적 의미에서 사리분별을 잃을 수도 있다.
상대성과에 집착하는 투자자는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으로 투자 결정을 내리기보다 투기자처럼 행동한다. 특정 주식이나 채권의 투자 매력을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보다 다른 투자자의 행동을 살피다가 한발 앞서 행동하려 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하는 매니저가 한 명만 있어도 나머지 매니저들이 모두 그 한사람의 행동을 따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일이 점점 더 복잡해진다.
이렇게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투자는 누구의 책임인가? 그런 투자가 위험하다거나 아예 그런 투자가 불가능하다는 사실과는 무관하게 고객들이 단기 성과에 집착한다고 믿는 매니저의 잘못인가? 아니면 이리저리 투자금을 자주 옮기는 고객 잘못인가? 둘 다 책임이 크다.
단기적인 상대 평가 경쟁에 승자는 없다. 단기에 시장 성과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주식과 채권 가격의 단기 움직임은 무작위적이며 이미 다른 사람들도 어마어마하게 노력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노력은 결국 펀드매니저들이 본질적으로 이길 수 없는 게임에 집중하는 바람에 건전한 장기투자기회를 찾고 실행에 옮길 기회를 박탈한다. 그 결과 고객들은 평범한 성과를 얻을 수 밖에 없으며, 자금이 장기투자보다 단기투자에 집중되므로 경제도 전반적으로 빈궁해진다. 그렇게 단기적으로 활발한 자금 움직임 속에서 이익을 보는 것은 브로커들 뿐이다.